[CDN insight] 가난이 상품화 된 세상
[CDN insight] 가난이 상품화 된 세상
  • 박서은 기자
  • 승인 2019.07.17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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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가 투어·쪽방 체험·빈티지 브랜드 인기

■ 용인시 59평 소유 최정훈…'짠나비'는 꾸며진 이미지?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컨슈머데이터뉴스 박서은 기자] 밴드 잔나비 보컬 최정훈은 과거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짠한 뮤지션의 일상을 보여줬다. 그는 상가 화장실에서 호수를 연결해 찬 물로 샤워를 하고 싱크대에서 머리를 감았다. 세탁기도 없어서 이불 빨리를 돌돌 말아 코인 빨래방으로 향했다. 작업실 겸 자취방은 지하에 위치해 환기도 안된다. 시청자들은 그에게 '짠나비'라는 별명을 쥐어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최근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이같은 모습이 꾸며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게 접대를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부잣집 아들이지만 방송을 위해 '가난한 뮤지션'을 콘셉트로 일부러 힘든 모습들을 보여줬다는게 네티즌의 주장이다. 일각에선 그가 실제론 분당 8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급히 연습실을 구해 촬영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확인 결과 분당 아닌 경기도 용인시였고, 80평이 아닌 59평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일부러 가난한 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짠한 모습이 자수성가형 밴드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좋은 음악을 만들어냈다며 호감을 나타냈다. 최정훈은 방송 출연 후 섭외 전화만 100통 넘게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4월 발표한 신곡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국내 음원사이트 멜론에서 역주행으로 실시간 차트 2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가난함을 드러내면 사람들의 동정과 호감을 얻기가 비교적 쉽다. 이를 노리고 가난을 팔아 돈을 버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 돈 주고 빈민가 관광하는 소비자들

빈민가 투어 ⓒ
빈민가 투어 ⓒ

'이런 상품도 판매가 되나' 싶은 투어 상품이 있다. 가이드와 함께 슬럼가를 둘러보는 '슬럼 투어'가 주인공이다. 슬럼은 일반적으로 빈민이 많은 지구나 주택환경이 나쁜 지구를 말한다. 대게 역사가 오래된 대도시의 일부 구역, 특히 불량 노후 건물 지역에 형성된 경우가 많다. 이곳이 상품으로 변한 시기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호싱야에서 처음 시작됐다. 호싱야는 남미에서 가장 큰 슬럼 중 하나다. 호싱야를 투어하는 소비자들은 연간 4만 명에 이른다.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당시에는 50만 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였다고 한다. 25파운드(약 3만7천 원)만 내면 3시간 동안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인도 뭄바이에도 비슷한 관광 상품이 있다. 인도 뭄바이 빈민가 다라비(Dharavi)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현지 주민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이 투어를 찾는 소비자들은 연간 1만5천 명 가량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2시간 반 기준 900루피(1만5000원)다. 투어를 운영 중인 여행사 '리얼리티 투어'는 다라비 출신 인도 청년이 외국에 세운 사회적 기업이다. 실제로 여행사는 투어 수익의 80%는 마을 발전을 위해 기부한다. 투어 주의점은 사진 촬영을 자제하고 지역 주민들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타운십, 케냐 나이로비 키베라 등도 인기 있는 슬럼 투어 장소로 꼽힌다. 미국에선 2010년 LA 뒷골목을 관광상품으로 한 'LA 갱 투어'가 등장했다. 갱 투어는 현직 갱원들이 직접 가이드로 나서 LA 갱의 역사를 알려준다. LA 갱 투어 CEO 알프레드 로마스는 "투어 수익금으로 지역 주민들을 지원하면 자연스레 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상품 기획 이유를 밝혔다.

일각에선 가난을 상품화 한다는 지적도 일었다. 호싱야 지역연합(UPMMR) 회장 레오 호드레그스는 "여행객들이 호싱야가 아니라 호싱야를 착취하는 여행사 사장들을 돕고 있다"며 슬림 투어를 지적했다. 주민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자기만족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관음한다는 의미였다.

■ 거주자 동의 없는 쪽방촌 체험

ⓒSBS
ⓒSBS

우리나라에서도 가난 체험 프로그램이 등장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인천시는 2015년 '인천시 동구 옛 생활 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 입법을 예고하면서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체험관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반드시 부모 동반해야 입실할 수 있으며 하루에 1만 원을 내면 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구는 타 지역 아이들과 부모가 쪽방촌이라는 옛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지자체가 쪽방촌을 관광지로 만들어 주민들을 구경거리로 만든다며 반발했다. 아울러 조례 입법 예고는 주민 동의도 얻지 않고 진행됐다. 쪽방 주민 300명 중 160여 명은 체험관 건립 반대 서명서를 제출했고, 결국 이 사업은 철회됐다.

인천 괭이부리마을 논란이 채 식기도 전에 서울에서 쪽방촌 체험이 또 등장했다. 2017년 서울시 중구청이 대학생 쪽방 체험 프로그램 '캠퍼스 밖 세상 알기- 작은방 사람들과 마음 나누기' 사업 시행을 발표한 것이었다. 서울시는 쪽방촌에서 2박3일간 지내며 주민들의 어려움과 고충을 공감하자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도 주민 동의 없이 진행됐고, 일부 주민들은 이런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 가난을 소재로 쓴 명품 브랜드

uperstar taped sneaker ⓒ골든 구스
uperstar taped sneaker ⓒ골든 구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골든구스는 낡고 찢어진 운동화를 고가에 판매해 물의를 빚었다. 회사는 구제를 콘셉트로 낡고 해진 신발을 디자인한다. 최근엔 '이걸 돈 주고 사야'하나 싶을 정도로 낡은 운동화를 출시해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새 신발인데 찢어진 부분이 있고, 이걸 테이프로 덧댔다. 가격은 530만 달러, 약 59만 원이다. 

네티즌들은 골든구스가 가난을 조롱했다며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골든 구스는 "패션의 가장 큰 트렌드 중 하나인 디스트레스트 룩(Distressed look·찢어지거나 구멍난 옷감을 활용해 가난함을 연출하는 것)을 활용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가난을 미화하는 게 언제부터 트렌드였냐"며 물러서지 않으며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명품 브랜드의 '디스트레스트 룩' 디자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어떤 이들은 낡고 해진 것도 명품일 수 있다며 기업을 지지한다. 가난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반면, 명품 브랜드가 가난을 기만하는 행위를 했다는 점과 낡고 해진 운동화를 고가에 사는 소비자가 가난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1975년 박완서 소설 '도둑맞은 가난'에선 이런 문구가 나온다. 부잣집 대학생 상훈이 가난 체험에 나서자 주인공은 "부자들이 가난을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렸다.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 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고 했다. 가난마저 에피소드로 삼는 시대가 결국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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