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2월 2026

‘불타는 증시’ 뒤에 숨겨진 공포, 치솟는 국채 금리와 글로벌 불확실성

최근 국내 금융시장은 ‘불타는 증시’와 ‘채권시장 발작’이라는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코스피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주식시장으로 막대한 자금이 쏠리는 사이, 채권시장은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며 국고채 금리가 1~2년 내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23%포인트 상승한 연 3.212%로 마감하며 1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장기물인 10년물과 20년물 금리 역시 각각 연 3.712%, 연 3.709%까지 치솟아 2023년 말 이후 약 2년 2개월 만에 정점에 도달했다.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진 탓으로 풀이된다. 통상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채권은 주식시장이 호황을 누릴 때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며 수요가 감소한다. 코스피의 고공행진에 따라 투자 자금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대거 이동했고, 이것이 채권 가격의 급락(금리 상승)을 초래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예상보다 매파적인 태도를 보이며 금리 인하 기대감을 차단한 점도 시장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한은은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 문구를 삭제하고 추가 인하 견해를 가진 위원 수를 대폭 줄임으로써 사실상 인하 사이클의 종료를 시사했다. 이에 대해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이제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과 국채 발행 물량이 금리 방향을 좌우하는 ‘재정 우위’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통령의 ‘추경’ 발언과 선거 앞둔 재정 리스크

새해 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추가경정예산(추경)’ 가능성은 국채 금리 상승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올해 내내 추경을 안 할 건 아니다”라며 가능성을 열어두었고,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재정 확장 움직임까지 더해지며 수급 불안을 자극했다. 추경 편성을 위해 적자 국채를 발행할 경우 시장에 물량이 쏟아지며 채권 가격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키움증권 안예하 연구원은 “연내 추경은 재정 확장 기조가 변하지 않는다는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해 최근 국채 금리 상승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균열 생긴 글로벌 금리 동결 기대와 AI의 역설

대외적으로는 견고했던 ‘글로벌 금리 동결’ 전망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점도 악재다. 호주 중앙은행은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기준금리를 3.6%에서 3.85%로 전격 인상했다. 이는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기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어 글로벌 채권 금리를 밀어 올렸다. 미국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의 매파적 성향 또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워시 지명 후 전개되는 달러 강세와 장기 금리 상승이 국내 채권시장에도 상반기 내내 큰 변동성을 가져올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한국과 중국 등 주요 아시아 시장이 설 연휴로 휴장한 가운데 수요일 열린 아시아 증시는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상승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 225 지수는 3일간의 하락세를 끊고 1.4% 반등했고, 호주 증시도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시장 밑바닥에는 AI 기업들의 과잉 투자와 신기술이 노동 시장에 미칠 파괴적 영향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NAB 애널리스트들은 “어떤 AI 기업이 승자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고,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 힘든 불확실성이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요동치는 원자재 및 외환 시장

원자재 및 외환 시장 역시 긴박하게 움직였다. 국제 유가는 이란과 미국의 핵 협상 진전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었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등락을 거듭하다 소폭 상승했다. 브렌트유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각각 배럴당 67.60달러와 62.51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금값은 장 초반 하락세를 딛고 반등해 1% 상승한 온스당 4,926달러를 기록했으며 은 또한 2% 넘게 올랐다.

외환 시장에서는 뉴질랜드 달러가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정책 유지 방침에 따라 0.8% 급락한 반면, 미국 달러화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연준의 1월 회의록 공개를 앞둔 경계감 속에 강세를 유지했다. 달러 인덱스는 아시아 거래 시간 중 97.22를 기록하며 소폭 상승했고, 엔화는 달러당 153.58엔으로 거래되며 강보합세를 보였다. 유럽과 미국 주식 선물 시장이 소폭 상승세로 출발을 알린 가운데, 글로벌 투자자들은 여전히 금리와 정책의 향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