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6월 2026

생존을 위한 연금의 진화: 한국의 뼈아픈 개혁과 일본의 크립토 헷징

팽팽한 긴장감 속 정적을 깨고 의사봉이 울렸던 2025년 3월 20일. 수년을 표류하던 국민연금 개혁안이 극적인 타결을 이룬 순간이었다. ‘더 내고 더 받는’ 구조로의 대수술을 거치며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로, 노후에 돌려받는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상향 조정됐다. 당장 2026년 1월부터 보험료율은 9.5%가 된다. 정부는 충격을 완화하고자 향후 8년에 걸쳐 매년 0.5%p씩 올리는 ‘슬로우 스텝(Slow-step)’ 방식을 택했지만, 경기 침체와 고물가라는 터널을 맨몸으로 걷고 있는 서민들에게 이 숫자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가입자 간 체감 온도의 극명한 차이다. 직장인의 경우 인상분 0.5%p의 절반을 회사가 내준다. 월 소득 300만 원이라면 월 7천500원 정도가 더 빠져나가는 셈이니, 커피 한두 잔 값 줄이면 감내할 만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같은 지역가입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이들은 인상분 전액을 오롯이 자기 주머니에서 감당해야 한다. 같은 300만 원을 벌어도 매월 1만 5천 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하고, 1년이면 18만 원이다. 8년 뒤 13% 시대가 도래했을 때 체감할 무게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장사는 제자리인데 떼이는 돈만 늘어난다는 현장의 짙은 한숨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이 피할 수 없는 파도를 넘기 위해 전문가들은 제도적 완충 장치를 적극적으로 당겨 쓰라고 조언한다. 소득이 급감했거나 사업이 어려워졌다면 일시적으로 납부를 유예하는 ‘납부예외’ 제도로 숨을 고를 수 있다. 또한 내년부터 시행되는 저소득 지역가입자 대상 보험료 지원 사업은, 납부를 재개하지 않더라도 최대 1년간 보험료 절반을 지원해 더 촘촘한 안전망을 제공할 예정이다. 당장 인건비와 임대료에 치이는 자영업자들에게 소득대체율 상향이라는 거시적 혜택이나 ‘안전한 노후 저축’이라는 프레임이 즉각적인 위로가 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기금을 더 걷어 연명을 도모할지 고군분투하는 동안,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는 기금을 방어하기 위한 꽤 파격적인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약 1억 3,600만 달러(한화 약 1,800억 원)의 자산을 굴리는 일본의 ‘전국기업연금기금(National Business Corporate Pension Fund)’은 2026 회계연도부터 전체 포트폴리오의 약 1%를 암호화폐에 할당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1,200여 곳의 기업 회원과 2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둔 연금의 행보치고는 대단히 도발적이다.

이는 결코 ‘코인 대박’을 노리는 단순한 갬블링이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헷징(Hedge) 전략에 가깝다. 2025년 기준 전체의 80%에 달했던 엔화 자산 비중을 내년엔 70%로 줄이고, 선진국 및 신흥국 통화에 분산시키는 동시에, 금과 암호화폐를 묶어 5%의 바구니를 새로 짰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금융청(FSA)의 관리 감독하에 꽤 성숙한 암호화폐 규제 환경을 다져왔다. 기금은 디지털 자산을 투기적 상품이 아니라, 끝없이 추락하는 엔화 가치를 방어할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금과 동일선상에 놓은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이 비트코인 지갑을 직접 개설하거나 온체인 포지션을 잡는 등 원초적인 방식을 피했다는 점이다. 철저히 대형 헤지펀드가 운용하는 패시브 멀티에셋 펀드를 통한 간접 노출을 택했다. 직접 투자가 수반하는 커스터디(수탁)나 프라이빗 키 관리, 블록체인 인프라의 복잡한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전통적인 자산 배분에 암호화폐를 녹여내려는 기관 투자자들의 새로운 수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은 규모라도 손실이 났을 때 쏟아질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해 철저히 다각화된 패시브 수단을 선택한 점도 기관 특유의 영리한 생존법이다.

한국이 ‘슬로우 스텝’이라는 고통 분담을 통해 인구 구조 붕괴와 맞서는 첫 번째 구조선을 띄웠다면, 일본은 전통적 자산군이라는 틀을 깨고 크립토라는 미지의 영역을 포트폴리오에 편입시키며 인플레이션에 저항하고 있다. 2026년, 거대한 거시경제의 풍랑 앞에서 두 나라는 각기 다른 생존의 나침반을 쥐었다. 이들의 상반되면서도 평행한 항해가 무사히 안착할 수 있을지, 우리는 지금 연금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진화하는 변곡점을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