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비의 그늘 벗어난 피그마, 상장 첫날 250% 폭등… 월가는 왜 ‘AI’에 베팅했나
미국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Figma)가 뉴욕 증시에 데뷔하자마자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상장 첫날인 31일(현지시간) 피그마의 주가는 100달러를 가볍게 뚫고 올라가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애초 기관 수요가 몰리며 공모가를 33달러로 올려 잡을 때부터 심상치 않더니, 뚜껑을 열어보니 장 마감가는 115.50달러였다. 하루 만에 공모가 대비 3.5배, 무려 250%가 폭등한 셈이다.
이번 주가 폭등으로 피그마의 시가총액은 순식간에 470억 달러(약 65조 5,400억 원)까지 불어났다. 지난 2022년 경쟁사이자 ‘포토샵’으로 친숙한 어도비(Adobe)가 피그마를 인수하려고 내밀었던 청구서가 200억 달러 수준이었다. 당시 유럽과 영국의 깐깐한 반독점 규제 문턱을 넘지 못해 2023년 인수가 최종 무산됐는데,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이 실패가 피그마에게는 오히려 독자 생존의 날개가 된 모양새다.
규제의 벽을 넘어 폭발하는 실적
단순히 운이 좋아서 상장 대박이 난 것은 아니다. 탄탄한 숫자가 그 배경을 설명해 준다. 당장 올해 2분기 잠정 매출만 봐도 작년 동기 대비 40%나 뛴 2억 4,700만~2억 5,000만 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1분기 매출 역시 46% 뛰어오르며 2개 분기 연속 성장세에 가속이 붙고 있다. 순매출유지율(NDR)은 139%를 찍으며 최근 2년 내 최고치를 경신했다.
2012년 현 최고경영자(CEO)인 딜런 필드(Dylan Field)가 친구 에반 월러스(Evan Wallace)와 창고에서 기획했던 이 회사는 이제 거대한 플랫폼으로 컸다. 지난 5월에는 한국어 버전 제품을 공식 출시하며 국내 시장 공략에도 본격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회사가 크니 창업자의 지갑도 두둑해졌다. 이번 기업공개(IPO) 성공으로 필드의 개인 자산은 61억 달러(약 8조 5,000억 원)로 껑충 뛰어,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세계 500대 부호 진입을 눈앞에 뒀다.
250억 달러짜리 판, 진짜 무기는 ‘AI’
월가에서도 즉각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씨티(Citi)는 피그마가 공략할 수 있는 전체 시장(TAM) 규모만 250억 달러에 달하며 아직 그 잠재력을 캐내기 시작한 초기 단계라고 평가하며 ‘매수’ 의견을 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씨티의 애널리스트 타일러 래드키(Tyler Radke)가 피그마의 진짜 성장 동력으로 기존의 디자인 비즈니스가 아닌 인공지능(AI)을 콕 집었다는 점이다. 현재 디자인 소프트웨어 업계 전반에는 생성형 AI가 디자이너의 파이를 뺏고 산업을 뒤흔들 수 있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시장은 피그마를 다르게 본다. AI가 코드를 더 많이, 더 빠르게 짜낼수록 디자인 작업량도 덩달아 늘어나고, 결국 그 방대한 작업이 피그마의 생태계 안에서 이뤄진다는 논리다.
실제로 하이퍼스케일러와 대형 금융사들 사이에서 라이선스를 업그레이드하고 크레딧 패키지를 싹쓸이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피그마는 지난 3월 18일부터 AI 크레딧 수익화를 시작했는데, 4월 말 기준으로 크레딧 한도를 초과했던 기업 유저의 75% 이상이 새로운 과금 체계에서도 지갑을 열며 크레딧을 계속 구매하고 있다.
여기에 MCP(Model Context Protocol) 서버의 수익화는 향후 주가를 밀어 올릴 확실한 촉매제로 꼽힌다. MCP를 활용하면 AI 에이전트가 피그마 파일을 직접 읽고 쓸 수 있다. 1분기 기준 MCP 주간 활성 사용자 수는 전 분기 대비 5배나 폭증했다. 특히 연 매출 10만 달러 이상을 내는 굵직한 고객사들 사이에서는 MCP를 쓰는 유저의 전체 액세스 증가율이 안 쓰는 곳보다 70%나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불확실성을 뚫고 나오는 우량주 랠리
물론 최근 미국 상장 시장의 거시적 환경이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미국 IPO 시장 전반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시장의 파고와 무관하게 ‘될 놈은 된다’는 공식이 증명되고 있다. 지난 3월 공모가 30달러로 증시에 입성했던 데이터센터 기업 코어위브(CoreWeave) 주가는 이미 110달러를 넘겼고, 6월에 31달러로 상장한 스테이블코인 업체 서클(Circle) 역시 180달러대에서 거래되며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피그마의 이번 폭등 역시 우량 기업에 목말랐던 시장의 강력한 수요가 반영된 결과다.
어도비라는 거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택한 피그마. 단순히 위기를 넘긴 것을 넘어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자신의 서핑보드 삼아 어디까지 밸류에이션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려 있다.